가토리신토류?

가토리신토류
개요 및 역사

개요

가토리신토류(香取神道流)는 15세기 무로마치 시대 중반에 이이자사쵸이사이이에나오(飯篠長威斉家直)가 창시한 일본 최초의 종합 무술 유파이다. 정식 명칭은 ‘텐신쇼덴 가토리신토류(天真正伝香取神道流)’로 불리고 있다.

창시 배경: 평생 직업군인으로 살아온 이에나오가 치바현 가토리 신궁에 1,000일간 은둔하며 기도한 끝에 창시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체계화된 교육: 단순한 싸움 기술에 머물던 검술에 최초로 ‘카타(형)’ 체계를 도입하고, 사승 관계와 교학 체계를 정립하여 현대 일본 무도의 기틀이 되었다.

주요전수: 6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원형이 보존되고 있으며, 근대 합기도 창시자인 우에시바 모리헤이 등 많은 무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치바현의 가토리신궁

역사

무로마치 시대 중반쯤, 직업군인으로 반평생을 살아 온 이이자사 쵸이사이 이에나오(飯篠長威斉家直)가 창립한 유파인데, 가토리신토류에서는 1447년이 개파년이라고 말하지만 일부 학자는 1480년 부근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파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60세 되던 해에이에나오가 카토리 신궁에서 1천 일 동안 밤낮으로 기도를 드리자 그곳에서 모시는 신인 후츠누시(経津主神)가 꿈에 내려와서 그에게 비전을 전했다고 한다. 카토리 신궁이 원래 무술 관련으로 이름난 신사라고 한다. 그래서 하늘이 진실로 바르게 전한 카토리 신사의 유파라는 뜻에서 텐신 쇼텐 카토리 신토류라고 명명했다. 초기에는 이름이 좀 왔다 갔다 해서, 개파 시절에는 천진정전신도류(天真正伝神道流)라고 했다가 신려신도류(神慮神道流)나 천진정전신도류(天真正伝神刀流) 등으로 바꾸었는데, 19대 본가 때 카토리 신사(치바 현)에서 따와서 카토리 신토류(天真正伝香取神道流)로 자리잡았다.

치바현이 1960년에 가토리신토류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했을 정도로 이름 높은 검술이다. 가시마신류(鹿島神流)의 창시자 마쓰모토 비젠노카미(松本備前守), 신카게류(新陰流)의 창시자 카미이즈미 노부츠나(上泉伊勢守信綱), 가시마신토류(鹿島新当流)의 창시자 츠카하라 보쿠덴(塚原卜伝) 등이 카토리 신토류를 배웠다고하니 가히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선조의 야마자키 스스무가 가토리신토류를 수련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대에도 이어져 내려온다. 특이하게도 종가가 직접 지도하는 다른 유파들과는 달리 사범가가 존재한다. 사범인 오타케 리스케(大竹利典)가 무술을 가르치고 보존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아들 쿄소 시게토시(京増重利)가 보좌한다. TV나 비디오에 제일 얼굴을 많이 비추는 사람들이다. 창시자의 후손인 20대 본가 이이자사 야스사다(飯篠快貞)가 있긴 하지만 혈통을 잇고 가문을 지킬 뿐 외부활동에서는 잘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검술, 거합, 유술, 봉술, 창술, 나기나타술의 각종 무기를 다룰 뿐만 아니라, 풍수와 축성, 수리검 기술에 인술, 신토의 주술적인 것까지 교리에 넣었다. 이쯤 하면 평범한 무술서가 아니라 야전교범으로 봐야 한다.

검을 중시하기 시작한 시대에 모든 무기를 골고루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고, 무술의 모든 움직임은 35 kg은 되는 요로이(일본 갑옷)를 걸친 상태에서 야외와 같은 평탄하지 않은 험한 지형에서 사용한다고 전제한다. 그래서 투구와 흉갑 사이의 목 경동맥을 노리거나, 다리 안쪽의 갑옷이 가리지 못하는 부분 같은 상대 갑옷의 스키(틈)를 제치고 무기를 찌르는 기법이 많다. 반면, 카부토(투구)의 장식 때문에 칼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동작이 걸리적거려서 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갑옷의 틈새를 노리기 어려운 때를 위해 힘으로 때려박는 강력한 내리베기 기술 역시 갖추었다. 여러모로 야전에서 싸우는 무사를 상정한 명백한 전쟁용 종합 무술이다.
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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