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 금요일 저녁 7:30 ~ 8:30
제주도 제주시 신광로 10길 21 B1
월요일 ~ 금요일 저녁 7:30 ~ 8:30
제주도 제주시 신광로 10길 21 B1

2009년 5월 26일 이묘우 제주 이시바시 선생 후기

사진에는 이묘우씨가 없군..

서울 상무 도장의 이묘우양의 제주 이시바시 선생 수련 후기 입니다..

나의 21번째 강습회였던 이시바시센세이 강습회(제주)를 다녀온지 어느새 한달이 넘었다.

게으르기도 했고, 시험도 있었고, 술도 계속 마셔줘야 했고, 이래저래 이유야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을 반추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같다.

4월 17일 금요일 낮 3시 반 비행기로 시작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4월 20일 월요일 오전 10시 비행기로 돌아오기까지 3박 4일 간,

내 온몸의 촉수가 살아움직였기에 그것을 한편의 글로 압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감동의 연속”이었다.

잊지 못할 평화박물관, 박물관장님의 설명, 그것을 주의 깊게 들으시던 일본분 일동, 그분들의 집중하는 뒷모습.

방명록을 남기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티던 이리스, 송은석 관장님, 성주환 지도원 등, 그들의 이유있는 고집까지도 모두 감동.

이들과 함께 한 수련이니, 무엇을 더 말하랴.

첫날, 도착하자마자 도깨비 도로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차에서 쿨쿨 주무시는 문영찬 관장님을 보며

행복한 만남 뒤에는 항상 이렇게 수고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제주팀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 강습회 끝난 지 한달만)에,

그리고 내가 손님 행세를 한다는 게왠지 죄송하기도 했지만

이왕 왔으니 혼자서라도 관광이나 하자는 심정으로도깨비 도로를 구경하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들려 고개를 돌렸더니

윤선생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온 박병성지도원님이다.

윤선생님과 일동분들께 반갑게 인사를 드린 후

눈으로 천천히 찾았다.

10개월만에 뵙게 될 이시바시 선생님… 어디 계신가…

윤선생님 바로 뒤에, 가벼운 캐주얼 차림에 무테 안경을 쓰시고(작년엔 하루만 뵈었기 때문에 안경을 쓰시는줄 몰랐다)

이런저런 익살스런 장난도 치시는 선생님을 뵙자마자 고개부터 꾸벅 숙였다.

선생께선 나를 기억하시려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들이 몽땅 한 자리에 앉아계시다는 것만으로,

언어의 장벽 같은 건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첫날부터 만땅 취해서(변명하자면, 항아리에 든 술을 망치로 깨먹는 요상한 술 땜에)

이래저래 실수가 많았다 한다…(필름 끊김.. -.-;;)

다음날 오전 8시에 눈을 떠서, 씻고, 로비에 내려갔더니

윤선생님께서 이시바시 선생님께 “쟤(->나-.-;)가 어젯밤엔 좀 미친 모양”이라고 영어로 말씀하시고는

(이시바시 선생님은 허허허 웃으시고)

“너 어젯밤에 침대에서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 크게들리던데…(괜찮냐?)”

라고말씀하시는데,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나의 실수 때문에 윤선생님께서 곤혹을 치르셨던 게 너무도 죄송했다.

그래서 그날의 교훈.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긴장의 끈을 놓지 말자.

그러나, 이 모든 자책과 반성은 <평화박물관>을 방문하는 순간 몽땅 상쇄되었다.

윤선생님 글에서도 읽은 적이 있지만,

박물관장님의 설명과 박물관의 이모저모는 다른 모든 잡념은 들어설 공간조차 없을 만큼

절박하고 진실한 것이었다.

성주환 지도원은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눈물이 났다고 하는데

리얼리스트로 단련된 인문학도인 탓인지, 나는 시종 마음이 급했다.

박물관장님 옆에 바짝 붙어 따라다니며

도저히 못참겠는 것은 직접 여쭤보았다.

제주.

지난 1월, 전국여행 끝에 우연찮게방문하여

혼자 4.3 공원을 찾았을 때부터

이 곳이 어떤곳인지 감을 잡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이란 것이

실은

무수한 백성들의 피와 눈물이 전제된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4.3을 알아야 6.25가 보이는 것이로구나…를 지난 1월 처음 알았고

이번에 평화박물관을 보면서

1930년대 일본 ‘대동아공영’의 전략적 실상에 대해대략이나마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아니라

그 밑에서 전쟁을 수행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하는 백성들과 군인들.

가해국이든 피해국이든 둘 다 못 할 짓이라는 그 명백한 사실에,

일본 관광객들도 하나같이 동의하는 듯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동영상(일본군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이 상영될 때 집중하시던이시바시 선생님의 구부정한 뒷모습에서

평화를 향한 깊고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나라도 내 나라가 다른 나라에 그런 폭력을 휘두른 영상을 보게 된다면, 그렇게 집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자국 매체에서 눈 감고 귀 막아온 진짜 진실을

열린 가슴으로 들을 수 있는 것 또한

아이키도가 추구하는 평화의 이념이

관념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다음엔 반드시 엄마랑친구를데리고 와서 한번 더 보리라, 결심하고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하는 중,

강습회 때필요한 이런저런 것을 구비해야 하는 임무가 얼떨결에 주어져서

준렬이랑 둘이 5분만에 해장국을 해치우고

미친듯이 움직여 임무 수행 후, 강습회 장에 10분 지각해 입장.

이시바시 선생님은

우리가 예전부터 해오던 입신던지기, 일교,전환, 검으로 유술 표현하기(맞나?) 등을 보여주시며

한사람 한사람을 일일이 잡아주셨다.

야마시마센세이 때처럼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이, 내겐 오히려 좋았다.

우케를 받는 다카시랑 겐지 상도

하늘같은 선배라기보단 푸근하고친근해서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윤선생님과 문영찬 관장님이 옆에서 계속 수련을 하시는 중간중간

가르침을 주셔서 너무도 감사했다.

사실,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과 모두 한번씩 다 잡아보고 싶었는데

윤선생님 옆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앞서서 별로 그러질 못했다…(-.-.;)

운동이라는 게, 하다보면 자꾸 이렇게 욕심이란 게 생기기도 하고 그러는 것인가보다.

그리고 제주의 해군 애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해군호텔의 가든파티.

티브이나 만화에서나 보던 가든파티를 직접 참가해보긴 처음이었다.

처음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통돼지 바베큐를 결 따라 일일이 찢어내 은쟁반에 담아내는 장인을 보고, 신기하고 놀라워서 계속 그 앞에 서 있었는데

그 양반이 진짜 맛있는 부위만 골라서 김이 펄펄 나는고기를 두번이나입에 쏙 넣어주셨을 때는 정말 쓰러질 뻔했다.

(머리털 나고 그렇게 맛있는 고기는처음…)

판타스틱한 가든 파티를 마무리하고 2차는 해군호텔의 지하 가라오케.

애교 만빵 사모님의 노래와 춤은 물론이거니와

윤선생님께서 그 중후하고 파워풀한 목소리로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몰라~~”(대충 기억나는 가사가 이것뿐) 이런 사랑노래를 부르실 땐

왜케 싱크로(동시체험)가 되던지, 나도 모르겠다.

수련 중엔 파리한 미소년처럼 앉아있던 켄이

갑자기 폭주해서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고

시종일관 진지했던 성주환 지도원이 불러제끼는 유행가 가락에서도, 최선을 다해 일상에 복무한 자의

일탈과 환희의 기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올라가지도 않는 고음의 노래를 고래고래 끝까지 불러서 결국은 박수까지 받고,

나중엔 통일염원을 담은 신형원의 노래 <터>(일년에 한번 부를까 말까 한 노래인데)를 불렀다.

일본분들은 가사를 모를 테니까

마침 옆에 있던 다카시 상에게 이야기해줬다.

“내가 아까 부른 노래는…싸우스 코리아랑 노쓰 코리아가 원래는 하나였다는 것…노쓰 코리아 차일드가 굶어서 죽고 있다는 것, 그래서통일은우리의 큰 숙제”라는 이야기를 했다.

2박 3일간 시원한 웃음소리로 주위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주던 다카시도 그때만큼은 무척 진지한 얼굴이었다.

“너희 나라(일본)엔 없는 우리나라의 숙제”.

그러고선

다음날 아침 호텔 식당에서

우연히 식사를 같이 한 후, 커피를 마시면서

되지도 않는 일어와 콩글리쉬를 섞어 온갖 수다를 다 떨었다.

한시간 넘은수다의 결론은,

야마시마 센세이 밑에서 수련하는 야마다 상에게

5월에 일본에 가기로 한 약속(전 일본연무대회 참석)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것.

나는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다카시는 왜케 배를 잡고 웃어대는지.

겐지의 허무한 웃음소리도 만만찮다.

나, 참.

그리고 마지막, 일요일 수련.

점심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안타깝게 지나간, 행복한 시간이었다.

강습회장을 가득 메운 봄햇살,

온몸으로 그 햇살을 맞으며 던지고 구르고 때론 살짝 날아가고

때론 선생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던 5시간 남짓한 그 시간이

한달이 넘은 지금 이 순간도 아프도록 그립다.

땀을 빗방울처럼 떨어뜨리며

비정하리만큼 무표정한 얼굴로차례차례 해군애들을 집어던지던

성주환 지도원을 보고

저것이 무사의 얼굴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묘한 감동이 일었다.

이래저래 감동과 충격으로 일관한 제주 강습회.

한달하고도 열흘이 지난

그 사이에본부강습회와 청주강습회가 더 있었다.

수련은 계속~~ 된다….

한주, 한달, 일년….

깨달음과 감동은 시간과 함께

더욱 두꺼운 부피로 더 깊이 가라앉아

어느 사이나 역시

기쁨도 슬픔도초월한 무표정한 얼굴로 수련할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도장에 가서 최선을 다하는 것. 몸도 마음도.

2009년 5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