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항암 투병 중 참가한 제32회 전국 아이키도 연무대회
아이키도는 참 신기한 무술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경쟁하지 않지만, 상대를 위해 조금 더 잘 하려고 경쟁한다. 제압하기 위해 다치게 하지 않지만, 보호하기 위해 제압하는 방법을 찾는다. 알고 있는 모든 기술을 동원해 최대한 안전한 방향을 모색하는 무술, 나를 공격하는 상대마저 최대한 보호하려는 무술. 배우면 배울수록,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그 깊이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무술이 바로 아이키도다.
돌이켜보면 아이키도는 어릴 적부터 이어온 무도 인생이 벽에 부딪히고 갈증을 느끼던 시기에, 가뭄 끝의 단비처럼 찾아온 무술이었다. 스티븐 시걸의 화려한 액션이 아이키도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 중 하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서울의 선생님 도장을 처음 찾아가 실제로 아이키도를 경험했던 그 순간의 느낌은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마치 신비한 힘이 나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무언가 둥실둥실한 기운이 나를 감싸 안아 이리저리 흔드는 듯한 그 감각. 그렇게 아이키도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시작의 연장선에서 참가했던 첫 연무대회를 잊을 수 없다. 2004년 제10회 전국 아이키도 연무대회. 아이키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나선 무대였고, 그날의 설렘은 아직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그 후로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전국 연무대회에 참가해왔다. 딱 한 번, 제31회 대회만 제외하고.
갑작스럽게 발견된 암, 그리고 뒤이어 급하게 시작된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 그 후유증과 부작용으로 인해 제31회 연무대회는 도저히 참석할 수 없었다. 늘 지켜오던 자리를 아쉬움을 뒤로한 채 비워야만 했던, 나에게는 유일하게 빠진 대회였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러 제32회 전국 아이키도 연무대회가 열렸다. 물론 나는 아직도 투병 중이다. 대회 참가 일주일 전에 15차 항암 치료를 받았고, 컨디션이 어떨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기다리다가 대회 이틀 전에야 겨우 몸 상태가 회복되어 참가할 수 있었다. 완전히 예정된 참가라기보다는, 몸이 허락해줘서 겨우 이루어진 참가였던 셈이다.
그렇게 어렵게 참가한 연무대회였다. 참가 소식을 전해 들은 선배들은 저마다 전화를 걸어와 “괜찮겠냐”, “절대 무리하지 마라”며 안부를 물었다. 그 걱정 어린 목소리들이 오히려 내 몸 상태가 아직 온전치 않다는 것을 스스로 실감하게 해주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나를 알아본 선후배들이 눈을 크게 뜨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과 눈을 맞추고, 한 번 한 번 손을 맞잡는 악수를 나눌 때마다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인연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구도 특별히 거창한 말을 건네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 속에서 진심 어린 사랑과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치유가 되는 시간이었다.
물론 예전처럼 화려하게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큰 동작도, 힘있는 낙법도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온전히,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어쩌면 화려함보다 더 값진 것은, 그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투병이라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아이키도라는 무술과, 그 무술로 맺어진 사람들이 있었기에 다시 매트 위에 설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제32회 전국 아이키도 연무대회는 단순한 무술 시연의 자리가 아니라, 나에게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는 치유의 자리였다. 앞으로도 몸이 허락하는 한, 아이키도가 가르쳐주는 그 깊은 세계 속에서 계속 배우고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끝으로 못난 남편을 간병하느라 너무도 고생이 많은 사랑하는 나의 아내 홍 희여사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