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장 칼럼 1 — 유단자 수첩의 빈칸
어릴 적 제 꿈은 작은 도장을 하나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속 무인처럼 강한 사람에게는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태권도, 한국 합기도, 쿵후, 격투기까지 여러 무술을 배우며 15년 가까이 도복을 입고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 서른이 넘어 아이키도를 만났습니다. 상대를 이기는 데 온 힘을 쏟던 제게, 아이키도는 진짜 강함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든 무도였습니다.
2005년 초단을 허락받던 날, 합기회에서 발행한 유단자 수첩을 받았습니다. 수첩 뒤쪽에는 강습회 참가 기록을 적는 칸이 있었는데, 빈칸이 어찌나 많던지 “이걸 언제 다 채우나” 하고 설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해마다 적게는 세 번, 많게는 여덟 번씩 국제 강습회를 찾아다녔습니다. 제주와 서울은 물론 일본까지 건너가 여러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이제는 속지가 모자라 세계본부에서 따로 받아 붙였는데, 그마저 또 한 장을 넘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세어 보니 어느덧 일흔 번이 넘습니다.
강습회에 갈 때마다 저는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배움입니다. 한두 번 배웠다고 몸에 붙는 기술이 아니기에, 매번 선생님의 손을 잡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그 알 수 없는 감각을 익히려 애씁니다.
둘째는 점검입니다. 강습회에서 배운 것을 도장에 돌아와 다음 강습회 때까지 수련합니다. 그리고 다시 강습회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손을 맞잡으며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직 부족한 곳이 보이고, 자만하지 않는 법을 다시 배웁니다.
2019년 합기회 7단 야마시마 다케시 선생님의 강습회 때 일입니다. 윤대현 선생님께서 야마시마 선생님께 “아이키도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야마시마 선생님은 한마디로 답하셨습니다.
“아이키도는 사랑입니다.”
무술의 본질은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니요. 처음에는 고개가 갸웃해졌지만, 수련을 거듭할수록 그 말이 조금씩 이해됩니다. 무술의 본질이 승리라면, 아이키도의 본질은 함께 사는 것, 곧 상생(相生)입니다. 상대와 끝없이 손을 맞잡으며 나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함께 나아가기 위한 배려와 협력을 배웁니다.
아이키도는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는 무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수첩의 다음 빈칸을 채우러 갑니다. 이 책을 펼친 여러분의 수첩에도 언젠가 그런 빈칸들이 하나씩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최종 수정 2026년 10월 30일 · 공개한 뒤에도 내용을 계속 다듬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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