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장 칼럼 5 — 늦었다고 생각할 때
밤새 비바람이 창문을 흔들던 날이 있었습니다. 잠을 설쳤는데도 아침이 상쾌했던 것은 전날 저녁 도장에서 흘린 땀 덕분이었을 겁니다. 한 달을 쉬고 다시 수련을 시작한 무렵이라 몸도 마음도 가벼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운동하자고 권하면 대답은 대개 비슷합니다. “이 나이에 뭘”, “요즘 너무 피곤해서”, “일이 바빠서.” 이십 년 넘게 같은 권유를 해 왔는데, 그때 하고 싶다던 동료들이 지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계속 해 왔으니까 하는 거지. 나는 이제 늦었어. 그때 시작했어야 했는데.”
어느 날 아침 읽은 글 속에 미국의 한 노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일흔이 훌쩍 넘도록 하는 일 없이 하늘만 바라보던 할아버지에게 한 자원봉사자가 그림을 배워 보시라고 권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 나이에 무슨 그림이냐며 손을 저었습니다. 그러자 자원봉사자가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연세가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마음이 문제 같은데요?” 그 말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할아버지는 백 살이 넘어서까지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미국의 샤갈’이라 불린 해리 리버맨의 이야기입니다.
돌아보면 제가 하고 싶던 것을 하지 못한 까닭도 환경이나 나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오직 강해지려고 수련했습니다. 남보다 단단한 주먹과 근육을 만들려고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몸을 혹독하게 다뤘습니다. 그렇게 운동한 선후배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지금 손목과 무릎 관절의 통증으로 고생합니다. 영원한 젊음이 없듯 영원한 강자도 없었습니다.
서른이 넘어 만난 아이키도는 달랐습니다. 상대를 이기려고 힘을 쓰는 무술이 아니라, 강함 속에 부드러움을 채우고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드러내는 무술이었습니다. 이 장에서 배운 응용기도 그렇습니다. 상대가 세게 들어올수록 기술은 더 잘 걸리고, 힘을 빼면 뺄수록 몸 전체의 힘이 상대에게 전해집니다. 그래서 아이키도는 나이가 든 뒤에 시작해도 늦지 않고,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무도입니다.
제주오승도장에는 마흔, 쉰이 넘어 처음 도복을 입은 회원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낙법 한 번에도 숨이 찼던 분들이 몇 해 지나 이 장의 기술들을 차례로 익혀 갑니다. 그분들의 기술에는 젊은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차분함이 있습니다. 해리 리버맨의 그림에 긴 인생이 묻어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느려도 정확한 것이 가장 빠르고, 아무리 늦어도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는 빠르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 새로 시작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지금 시작해 새로운 끝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이 책을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제 도장 문을 두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최종 수정 2026년 10월 30일 · 공개한 뒤에도 내용을 계속 다듬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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